짧은 눈물 쏟아낸 하늘 이내 파란 낯빛 돌아오고 세상을 환히 밝히는 붉은 잎새들 힘을 모두 풀어 제 몸을 익히고 한 줄기 햇살에도 떨어지는 잎 그러나 저 세찬 바람은 누가 보내는가 구름도 내려와 처연한 풍장風葬을 지켜본다 가을이 깊을수록, 가슴이 시릴수록 사람이 그립다. 사람이 그리운 날 중에서 오래도록 가을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오지 않는 가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했습니다. 내 상상 속의 가을은, 세상에 태어나 그럭저럭 꽤 오래 살아온, 그러나 어딘지 소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남자. 가끔 미소를 지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조금 쓸쓸해보이지만 따뜻함을 감추고 있는, 휘파람 같은 목소리를 가진, 쌉쌀한 맛의 입술을 가진, 비오는 밤의 하늘 색깔과 같은 눈동자를 가진 그런 남자. 그는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을 서성이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가끔 방심하기도 하고 그 사이에 내게 들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퉁이를 돌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뛰어가보면 어느새 사라져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혼자 깊은 밤 속에서 그를 생각할 때면 포기하지 말라고, 잊지 말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속삭입니다. 스르르, 소리도 없이 어느새 곁에 와 있는 가을. 그러나 그는 여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내 주위를 서성이다 불현듯 증발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심장을 찌르고 위무하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나를 떠날, 가을. 나를 향해 다가온 줄 알았더니 한두 마디 이야기만 나누고 그대로 스쳐가버리던 해마다의 가을. 그러나 오늘 문득 가을과 내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가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가 헤어지는 게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나란히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내 손을 잡고 걸어온 여름이 자, 이제 가을과 동행하세요, 하고 그의 손에 나를 넘겨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세상의 모든 것은 잊다가 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쉽게 정을 주지 않는 건 이별의 무게가 무거울까 봐.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없듯,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없을지 몰라요. 이 가을, 가을과 나란히 걷는 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사랑을 하는 일, 나는 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나란히 걷기 / PAPER 황경신 보고싶은 당신, 오늘 아침엔 안개가 끼었네요. 그곳은 어떤지요? 햇살이 드세질수록 안개는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만 내 가슴에 그물망처럼 쳐져 있는 당신은, 당신을 향한 내 그리움은 좀체 걷혀지질 않네요. 여전히 사랑하는 당신, 온종일 당신 생각 속에 있다 보니 어느덧 또 하루 해가 저무네요. 세상 살아가는 일이 다 무언가를 보내는 일이라지만 보내고 나서도 보내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네요. 두고두고 소식 알고픈 내 단 하나의 사람. 떠나고 나서 더 또렷한 당신. 혹 지나는 길이 있으면 나랑 커피 한잔 안 할래요? 내 삶이 더 저물기 전에. 안 부 / 이정하 죽기 전에 새들은 날개가 처음 돋았던 시절을 기억했을까. 처음 비상을 할 때, 하늘을 우러르는 빛으로 솟아오르던 그 푸른 눈동자들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간 후, 날개가 꺾여 파르르 떨리던 그 순간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있는 한, 죽음 역시 삶의 과정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 태어난 새들은 어디서나 죽고 그러고 나면 다시 어린 새들이 태어나겠지. 흐린 이 가을날, 먼 곳 들판 한켠에서 엎드린 곤충들이 바싹바싹 말라가며 죽어가고 있고, 그 곁에 말갛게 씻은 참깨 같은 알들이 소복이 쌓여 있듯이...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의 진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 세상에 단 한 가지쯤은 변하지 않고 늘 거기 있어주는 게 한 가지쯤 있었으면 했는데.... 그게 사랑이든 사람이든 진실이든 혹은 내 자신이든.... 공지영 /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중에서
♬ 그리움으로 - 열 아홉 순정 O.S.T